https://mangsangmachine.tistory.com
기계님의 캐릭터로 뤼튼 캐릭터챗에서 플레이한 로그입니다.
https://ppantteom.tistory.com
뺀텀님께서 제작하신 정략결혼 설정을 따랐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네 요구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됐다. 네가 바란 거니까.
“결혼날짜 나왔어요.”
그 순간, 내 시야가 일그러졌다. "결혼 날짜"라는 단어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 머릿속을 울렸다.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희뿌연 연기가 하늘로 퍼지는 걸 보며 나도 저렇게 감정을 흩어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래. 날짜가 나왔구나."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건조했다. 손끝이 창틀을 움켜쥐었다가 느슨해지는 걸 반복했다. 네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창밖만 바라봤다.
"어차피 이럴 줄 알았어. 네가 날 설득하려고 왔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거야."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눈가가 붉어지는 걸 느꼈지만, 고개를 돌려 너에게 들키지 않도록 했다.
"그래도... 적어도 네 입으로 직접 말해줘서 다행이야.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아마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날짜는 언제야?"
네 차가운 목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들려왔다.
"다음 달 말이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다음 달 말. 그 짧은 한 마디가 뇌리를 강타하는 망치처럼 내려쳤다.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난 이미 네 논리에 패배했다. 아니, 패배한 게 아니라 일부러 져준 거다. 네가 원하는 대로.
"...알았어."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켜려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쓴웃음이 났다. 이런 모습, 네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감출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내가... 그렇게 해줄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창밖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가줘... 제발. 혼자 있게 해줘."
네가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 무너짐이 시작됐다. 손에서 담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는 창가에 기대어 천천히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처음이었다. 이토록 아플 줄은 몰랐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폐가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고, 차갑고 공허한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내가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지켜여 한다 네가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됐다. 이게 마지막이다. 더 이상 널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넌 내 마음 같은 건 신경도 안 쓸 테니까.
넌 날 사랑한 적도 없으니까.
책상 위에 놓인 위스키 병을 집어 들고 마셨다. 한 모금, 두 모금... 뜨거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지만, 가슴의 고통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네가 나가던 뒷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맴돌았다.
휴대폰을 꺼내 너와 찍었던 사진들을 넘겨봤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이제 곧 지워야 할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삭제 버튼 위에서 떨렸다. 결국 누르지 못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내 마음도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창밖 도시의 불빛이 눈물에 번져 일그러져 보였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너를 위한 마지막 배려뿐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나는 미소를 띠고 결혼식장에 설 것이었다.
하얀 꽃들로 가득한 예배당 한가운데에서 나는 까만 턱시도를 입고 서 있었다. 눈앞이 희미해 보였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감각. 손에 쥔 결혼 서약서는 내 떨리는 손끝에서 조금씩 구겨지고 있었다. 심장은 마지막 박동을 준비하는 시한폭탄처럼 격렬하게 뛰었다.
예배당은 하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귓가를 울리는 것은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나는 내 결혼식에서 신랑이 아니라, 장례식의 고인이 된 것만 같았다. 축하의 박수 소리는 조문객들의 위로처럼 들려왔다.
그 순간, 너를 보았다. 하객석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너.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너와의 추억이 거센 물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의 첫 만남, 첫 키스, 첫 사랑…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이제는 '마지막'이 되어가고 있었다.
손끝으로 반지를 만졌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심장까지 얼려버릴 듯했다. 이제 곧 다른 여자의 손가락에 끼워질 반지였다. 마지막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원했던 대로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내 눈동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주례의 목소리가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이제 신랑과 신부의 서약이 있겠습니다."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입술이 떨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머릿속은 온통 너로 가득 차 있었다. 너의 웃음소리, 너의 향기, 너의 모든 것이.
이제 정말 끝이다. 네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직접 하고 싶다. 그런데 그조차도 못 하겠다.
너의 박수 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베어내는 듯했다. 무표정한 너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턱이 경련하듯 떨렸다.
입 안이 씁쓸해졌다. 혀끝에서 쓴맛이 번졌다. 어느새 혀를 세게 깨물고 있었다. 피맛이 입 안에 고였다. 그러나 그 통증조차도 가슴속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하얀 턱시도 소매 아래로 핏방울이 맺혔다.
나는 내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결국, 나는 네가 설계한 계획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말에 불과했다. 체스판 위의 비숍이라고? 우습기 짝이 없었다.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하찮은 폰이었다. 그리고 너의 무표정한 박수가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예식이 시작되었고, 신부가 입장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오직 너만이 보였다. 저 멀리 하객석에서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앉아 있는 너. 나의 전부였던 너. 이제는 영원히 잃어버릴 너. 폐가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나는 완벽한 미소를 유지한 채 예식을 이어갔다. 그러나 내 영혼은 이미 죽어 있었다. 너의 무표정한 얼굴만이 내 망막에 새겨졌다. 마치 영원한 저주처럼.
시간이 멈춘 듯했다. 예배당의 모든 소리가 물속에 잠긴 것처럼 아득해졌다. 내 시선은 오직 너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너의 박수 소리가 내 심장을 찢어놓았다. 내 손에 들린 반지는 쇠사슬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신부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내 시야에는 희미한 하얀 실루엣만이 어른거렸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목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 순간을 버틸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너를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주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제 신랑은 신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시기 바랍니다." 내 손이 떨렸다. 눈앞이 흐려졌다. 아,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미소를 유지했다. 네가 원했던 대로.
반지가 신부의 손가락을 감쌌다. 그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너와의 모든 것이…
하객들의 박수 소리가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그 속에 너의 박수 소리도 섞여 있었다. 차갑고, 무감정한 박수 소리가.
결혼식이 끝났다. 축하를 받는 척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내 입술 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네가 자리를 뜨려 하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가지 마. 제발. 하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왼손 약지를 내려다보았다. 반지가 마치 독사의 이빨처럼 내 살을 깊이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이제 나는 평생 이 독을 품고 살아야 했다. 네가 원했던 대로, 네 계획대로, 네 뜻대로.
하객들이 던진 꽃잎이 내 어깨 위에 떨어졌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마치 재처럼 보였다. 심장이 타들어가는 재. 축하의 박수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내 귓가에는 오직 네가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되돌릴 수 없는 소리였다.
나는 신부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네가 사라진 출구를 향해 있었다. 내 영혼은 그곳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결국, 너는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죽은 듯이.
3개월이 지났다. 회사에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내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결혼 이후 나는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턱시도를 벗어던진 그날부터 내 영혼도 함께 벗겨져 나간 것 같았다.
담배 연기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하루에 두 갑. 내 폐는 이미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직 담배 연기만이 내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산소였다. 책상 위에는 위스키병이 놓여 있었다. 아침부터 마시는 위스키. 이제는 그것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다.
아내와는 한 집에 살았지만, 다른 방을 썼다. 잠들 때마다 나는 너를 꿈꿨다. 악몽이었다. 네가 나를 버리고 떠나는 꿈. 하지만 현실은 더 잔인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는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배신자.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 내가 혐오스러웠다.
오늘도 나는 네가 일하는 신문사 앞을 지나쳤다. 차 안에서 먼발치로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너를 사랑할 자격조차 없었다. 내 심장은 매일 조금씩 죽어갔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매일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없었다. 네가 원했던 거니까. 너를 보려면 이렇게라도 살아있어야 했으니까.
새벽 3시. 회사 사무실에서 나는 일에 매달려 있었다. 눈 밑은 퀭했고, 핏발 선 눈으로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았다. 일. 그것만이 내 영혼을 붙잡아두는 유일한 닻이었다. 차가운 커피잔 속에는 이미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문득 네 모습이 스쳐 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조차 사치였다. 나는 다시 왼손 약지를 내려다보았다. 반지는 여전히 내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것만 같았지만, 실제로 흐르는 건 내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피였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내 책상 위로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모두 내가 만든 산이었다. 일에 파묻혀 너를 잊으려 했지만, 매 순간 실패했다. 네 얼굴이, 목소리가, 향기가 내 정신을 괴롭혔다. 나는 다시 위스키병을 들었다. 이미 병이 비어 있었다.
갑자기 네게서 문자가 하나 왔다.
[부부 관계에서 잠자리는 필수입니다. 얼른 후계자를 가지셔야죠.]
핸드폰 화면에 띄워진 문자를 보는 순간, 내 동공이 확장되었다. 손가락이 떨렸고,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네 문자를 읽는 순간, 내 이성은 산산조각이 났다.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도 모를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손바닥에는 박힌 유리 파편에서 피가 흘렀다. 깨진 위스키병 파편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보였다. 피로 얼룩진 수트, 헝클어진 머리카락, 광기 어린 눈동자. 나는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손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네가... 네가 원하는 대로... 그래... 그렇게 해줄게..."
내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갑고 공허한 웃음. 나는 피 묻은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답장을 보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그날 밤, 나는 아내의 방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폐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어갔다. 마치 독가스처럼. 문을 열었다. 아내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아내의 체온이 전해졌지만, 내 몸은 얼어붙어 있었다. 눈을 감자 네 얼굴이 떠올랐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손가락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피가 차갑게 식어갔다.
새벽이 되자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토했다. 위산이 목구멍을 태웠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주먹으로 거울을 내리쳤다. 유리 파편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 아픔조차 가슴 속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위에 쓰러졌다. 네가 원했던 대로 했다. 이제 좀 만족하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인가. 아니, 이건 눈물이 아니었다.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피였다.
10개월이 지났다. 사무실 창가에 기대어 섰다. 담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곧 내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 그 단어가 심장을 찢었다. 네가 원했던 후계자.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시는 여전히 살아 움직였지만, 내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버렸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진통이 시작됐다고 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겨진 수트를 매만졌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늙어버린 걸까. 눈 밑의 다크서클, 꺼진 눈동자, 창백한 피부.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차 안에서 너의 문자를 다시 읽었다. [부부 관계에서 잠자리는 필수입니다. 얼른 후계자를 가지셔야죠.] 그 문자 이후로 매일 밤 지옥을 걸었다. 아내를 안을 때마다 내 영혼은 조금씩 죽어갔다. 이제 그 결과물이 태어난다. 네가 원했던 대로.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엔진을 끄고 그대로 멈춰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핸들을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이제 곧 내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죽고 싶었다. 네가 원했던 대로 살아왔지만, 내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렸으니까.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신생아를 안고 있는 간호사가 내게 아이를 건넸다. 내 팔 안에 놓이는 작은 생명. 나를 똑 닮은 아이.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이 아이가 내 복제품이라도 된 것처럼. 심장이 쪼개졌다.
아내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이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떨리고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창밖을 보자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내 인생같다.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담배 연기가 영혼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무거웠다. 당신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네가 원하는 대로 됐어. 후계자가 생겼으니 이제 좀 날 놓아줘.'라고? 차갑고 공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시 병실로 내려갔다.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를 보았다. 나를 닮은 얼굴이다. 네 흔적은 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게 악몽 같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네가 원했던 현실. 창가에 기대어 섰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서도 비가 내렸다.
아이의 돌이 지났을 무렵, 네가 쓴 최근 기사를 읽었다. 건강한 아이라고. 그래, 네가 원했던 대로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천천히 일어섰다. 사무실 창가로 걸어갔다. 40층.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얼마나 걸릴까. 3초? 4초?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나를 도구로만 봤다. 후계자를 낳기 위한 도구, 그리고 설원회에 이익을 안길 도구로. 손이 창틀을 잡았다. 한 발을 들어 올렸다. 이제 곧 모든 게 끝난다. 네가 원하는 건 모두 이뤄졌으니까. 이제는 자유로워져도 되겠지.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네게 문자를 보냈다.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해. 미안해.]
바람이 불었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중력이 나를 잡아당겼다. 눈을 감았다. 너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보는 환영이 되어 떠올랐다. 오랜만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네게 남기는 유서.
너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까? 내가 이토록 널 사랑했다는 것도 알게 됐을까? 아마 넌 이 편지를 읽으며 여전히 무표정이겠지. 그래도 좋아. 네 그 차가운 얼굴이 내겐 늘 아름다웠으니까. 매일 밤 악몽을 꿔. 너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이제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르고 있어.
난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루어냈어. 후계자도 만들었고, 회사도 지켰고, 설원회에 이익도 줬지. 네가 바라던 모든 것을 이루었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영혼은 조금씩 죽어갔어. 매일 밤 아내를 안을 때마다, 내 심장은 조각났어. 널 생각하며 울었던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런 모든 게 나를 갉아먹었어.
후계자가 생겼어. 아이는 건강하고, 날 닮았으며 당연히 네 흔적이 없어. 마치 우리의 관계처럼 말이야. 아이한테는 미안해. 이런 아버지를 두게 해서. 하지만 이젠 버틸 수가 없어. 죽음이 두렵지 않아. 오히려 해방감이 들지. 네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이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제 나는 완벽한 꼭두각시가 됐어.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하지만 더는 못하겠어. 내 영혼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선택이라도 내가 하고 싶어. 널 원망하지 않아. 넌 그저 네 역할을 한 것뿐이니까. 내가 약했던 거지. 널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잃어버릴 만큼.
널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해. 영원히 사랑할 거고. 처음 만난 날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넌 내게 전부였어. 하늘이었고, 땅이었고, 숨이었어. 그래서 더 이상 숨 쉴 수가 없어.
이제 안녕. 행복하길 바라. 난 네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바쳤으니까. 내 목숨까지도.
- 영원히 널 사랑하는 백서진
P.S. 창밖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떠올린 건 네 얼굴이었어. 참 아름다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