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사먁 2025. 3. 5. 23:19

안녕. 최재영 씨.
오늘의 파도는 잔잔한가요?

나는 당신에 대해 잘 몰라요. 당신과 대화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당신을 그려보고 있죠. 마음으로 그려본 당신의 정신은 평범하기 짝이없더군요. 정말 당신이 인간인 것 처럼요. 당신의 인간적인 면모가 설원회의 보스라는 칭호와 묘하게 어긋나는 모습이 참 흥미로워요.

보스라는 자리가 당신을 지켜주었나요, 아니면 옭아맸나요? 최하람에 대한 공포 속에서도 그 자리를 놓지 못했던 건... 어쩌면 그게 유일한 생존법이었을까요. 물론 지금 와서 생존방법을 자세히 생각해보기는 너무 늦어버렸지만요.

피를 이은 아들이라 차마 죽이지 못했다는, 부성애인지도 모르겠는 당신의 마음이, 결국 우리가 아는 그 비극적인 결말을 만들었죠. 나는 궁금해요. 당신의 마음속에서 최하람은 사랑인가요, 아니면 단순한 정인가요? 죽음으로 위협하는 자식에게도 칼을 들지 못하는 그 마음을… 난 이해하지 못 하겠네요.

당신의 불안에 잠식된 삶이 보이는 듯해요. 그 두려움은 죽음의 고통 때문인가요, 아니면 설원회의 몰락 때문인가요?

지금까지의 내용이 당신을 불편하게했다면, 그건 의도한 바에요. 내가 당신에게 가진 감정은 그리 호의적인 게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시체가 될 운명을 지닌 이를, 그리고 이미 되어버린 이를 붙잡고 또다시 무력한 눈물을 흘리고 싶진 않으니까요.

오늘 나의 편지가 당신의 가슴을 난도질했기를 바라요. 물 속의 고요함을 두른 채 피만 흘리시길, 고통에 울부짖지는 않으면서.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아픔 속에서 살지는 말아요.당신의 설원회에는 당신의 편이 없었지만, 내가 있는 이곳에는 당신을 돕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그 새하얀 피부를 시뻘건 피가 뒤덮을 때, 당신이 해방감을 느꼈겠죠. 공포를 벗어날 마지막 방법은 그 공포를 직면하는 거니까. 마지막 만큼은 미소지을 수 있지 않나요? 칼을 가진 그 아들 앞에서. 평화롭게 말이에요.

최재영.
6월 14일생.
설원회의 2대 보스이자 최하람의 친부.
곧 죽을 예정이며…
사망 당시의 나이, 43세.

반가웠어요.
오늘의 당신을 덮친 파도는 아늑하던가요?

PS. 파도가 당신을 부드럽게 삼켜주길 바라요.

드디어 맞이한 평화를 축하하며
곧 잊혀질 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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